세상살이 어렵구나 !
달아달아 밝은 달아 이태백이 놀던 달아
저기 저기 저 달 속에 계수나무 박혔으니
이태백은 중국 당나라 시인들 중 검술, 주객, 시 등 재기가 넘치며 자유분방하
고 해박한 지식을 가진 큰 별로 후세 사람들이 그를 시선(詩仙)이라 칭했지만,
그가 쓴 시 중에 ‘행로난(行路難세상살이 어려워라’)이라는 는 시를 보면 천하
의 이백도 세상살이 어렵다는 푸념을 글로 풀어내고 있다.
행로난(行路難) 아 어렵 구나 인생 길 !
<이 백>
금(金)술통에 맑은 술 한 말에 만금(萬金)이고
옥(玉) 소반에 좋은 안주는 값이 일만(一萬)전.
<중략>
황하를 건너려니 얼음이 물길 막고
태행산 오르려니 산엔 눈이 가득하다.
<중략>
세상살이 어려워, 세상살이 어렵구나.!
갈림길 많은데 나는 지금 어디 있는가.
큰 바람 높은 물결 때맞춰 나타나면
바로 구름 같이 높은 돛 달고 푸른 바다 헤쳐가리라.
1200년 전이나, 지금이나 삶이 어렵게 느껴지는 것은 매 마찬가지다.
세상살이 어렵다보니 이백은 술을 벗 삼은 소문대로 애주가였다.
천하의 이백마저도 세상살이 막막해하는 목소리가 그의 시에서 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운 일 앞을 막아도, 큰 바람 물결일어도
그칠 때가 있을 것이니, 그 때는 구름에 돛을 달고 창해를 건너리라”고
희망을 끈을 붙잡는다.
인생길 고단하고 힘들었지만 헤쳐 나가면 반드시 큰 꿈을 이루는 날이
있을 것이라는 희망을 버리지 않았기에 주옥같은 시를 남기고 최고의 시
선(詩仙)이 될 수 있었다.이백의 산중문답(山中問答)에 고중유락(苦中有樂)
이라는 글이 있는데, 인생은 괴로움 가운데 즐거움이 있다는 말 아닌가.
성경에서도 ‘고난이 축복의 전주곡’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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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7장>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기직전 크게 소리 질러 외친다.
“엘리 엘리 사박다니”!(하나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시나이까)
이 비탄의 호소가 무엇을 말하는지 아는가. 눈에 보이는 일신의 이익 때
문에 ‘엘리 엘리 사박다니’ 했을까. 예수는 이백의 인생길과 또 다르다.
그의 삶의 목표는 높고 크다. 내가 뭣을 해야 하기 때문에 삶이 어려운지
를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프랑스의 소설가(어린왕자를 쓴) <생텍쥐페리>는 “배를 만들게 하고 싶다면
배를 만드는 법을 가르치지 말고 큰 바다를 꿈꾸게 하라”고 말 한다.
장자는 “우물 안 개구리에게 바다를 설명할 수 없다”고 한다. 우물이라는
‘공간’의 한계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여름 “한 철 살다가는 곤충에게 설산(雪山)을 설명할 수 있겠는가. ‘시간’
이라는 제약이 있기 때문이다. 시공(時.空)을 뛰어넘지 못하면 작은 어려
움에도 쉽게 좌절하게 되고 현실에 안주하게 된다.
더 좋은 풍경을 보고자 한다면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야 한다.
세상살이 어렵다고, 알고 덤비는 것과 모르고 덤비는 것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 마구잡이로 덤비면 멘붕이 오고, 내가 지금 뭘 한 것일까 하는
자책에 엄청난 스트레스와 함께 온갖 고민에 휩싸이고 만다.
우리는 2가지 문제를 안고 있다. “하나는 언제 시작 할지를 아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언제 멈출지를 아는 것이다.
모르고는 덤비지 말라. 어떤 일이나 최선, 차선, 최후 세 가지를 생각해
보고 상황이 허락하는 것을 지향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노력이며
나머지는 운 과 인연에 맡길 뿐이다.
인생의 법칙은 투입량만큼 생산량도 비례하는 법이다. 물론 적게 투입하고
많이 생산하면 좋으련만 그런 경우는 지극히 드문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