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십리만 더 가시오
  • 2016-08-23
진서리
             십리만 더 가시오

서울에 왕십리(往十里)라는 지명이 있다.


이성계가 등극하여 대신들과 천도를 하기로 결정하고 왕사(王師)인 무학대사


에게 도읍지를 찾아달라고 간청했다.





   무학대사는 계룡산으로 내려가 산세와 지세를 살폈으나 도읍지로는 적합지


않아 발길을 북쪽으로 옮겨 한양에 도착 봉은사에서 하룻밤을 쉬고 이튼 날


일찍 뚝섬나루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니 넓은 들판이 한 눈에 들어온다.


옳다 이곳(후에 왕십리)이 가장 적합하구나.


음 땅이 넓고 강이 흐르니 과연 새 왕조의 도읍지로 적합하다고 생각되어


흐뭇한 마음으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이 놈의 소는 미련하기가 무학 같구나.”


왜 바른 길로 가야지 굳이 굽은 길로 들어서느냐 하며 소를 몰고 가는


노인이 소를 때리며 꾸짖고 있지 않은가.


무학대사는 얼른 노인 앞으로 달려간다.


노인장 지금 소더러 뭐라고 하였는지요.”


미련하기가 꼭 무학 같다고 했소.”


그건 무슨 뜻으로 하신 말씀인지요.”


아마 요즘 무학이 새 도읍지를 찾아다니는 모양인데, 좋은 곳을 다 놓아 두


엉뚱한 곳만 찾아다니니 어찌 미련하고 한심한 일이 아니겠소.


무학대사는 노인이 보통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공손히 합장하고 절을 올


리며 말했다.


제가 바로 미련한 무학입니다.”


제 소견으로는 이곳이 좋은 도읍지라고 보았는데 노인장께서 일깨워줘서 정


말 감사합니다. 더 좋은 도읍지를 일러주십시오. 하고 간청한다.


여기서부터 십리를 더 들어가 주변 지형을 살펴보도록 하시오.”


무학대사가 정중하게 인사를 하는 순간 노인과 소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무학은 걸음을 재촉 서북쪽으로 십리를 걸어 당도한 곳이 북악산 밑 지금의


경복궁터였다.



과연 명당이로구나.” 삼각산, 인왕산, 남산 등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아늑


한 땅을 보는 순간 무학은 기쁨을 감출 수가 없었다.


무학은 그 길로 태조에게 알렸고 한양을 새 도읍지로 정하여 도성을 쌓고


궁궐을 짓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 후 십리를 더 가라는 뜻으로 갈 왕()자에 십리(十里)를 붙여 지금의


왕십리가 되었다고 한다. 서울 600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往十里


서울의 시작과 함께 새로 태어난 마을로 기억되고 있다.


한편 往十里포기하지 않는 꾸준한 노력에 대한 이야기로 해석된다.


십리의 노력을 더 기울이라는 의미다. 주전자의 물이 끓을 때에도 99도의


을 가해서 앞으로 1만 높이면 형질전환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최고의 명당까지 십리, 물이 끓는 비등점까지의 99 시점이 가장 힘들고


피로를 느끼는 순간이다.


더는 못가겠다. 안 되는구나 !


포기하고 싶은 유혹을 받는 시점이다.


왕십리라는 지명을 통해 좌절하거나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지혜를 얻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