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에 정답이 없다지만
우리는 왜(why)사는가?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사람답게 살기위해서는 인간을 이해하는 일이 우선이다.
그걸 알기위한 학문이 인문학이다.
사람이 살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나침판이 되는 학문이다.
실질적으로 빵과는 직접적인 상관이 없다. 돈이 안 되는 학문이다.
대학들이 인문학을 포기하고 돈이 되는 실용적인 학문에만 몰두한다.
그 결과 ‘이기는 것만이 선(善)이고, 살아남는 자가 사회 정의’가 되고 있다.
이런 상황을 보면서 책 속에 길이 있으니 책을 봐라, 글을 읽어라, 권하기에는
참으로 민망스럽기 짝이 없다.
21c 한국경제는 세계10위권 안에 들어섰고 이제는 어느 정도 먹고살만한 살림
살이가 된 게 사실이다.
그런데 문득 가슴 속이 크게 뚫려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 텅 빈 ‘구멍’의 실체를 알기 위해 자문한다.
바로 ‘왜’라는 자기 정체성의 질문이다.
나는 누구인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은 종교가 아니다.
인문학 책 속에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국의 공리주의 철학자 <존 스튜어트 밀>은 “배부른 돼지가 되기보다는 배
고픈 사람이 더 낫고, 만족한 바보보다는 불만족한 소크라테스가 더 낫다."고
하지 않았던가.
얼마 전에 서울 강남의 고급아파트에서 홀로 쓸쓸하게 죽어간 노인이 있었다.
사람은 빵만으로 사는 게 아니다. 맛있는 음식을 젓가락으로 집어서 자기입으
로 먼저 가져가면 지옥이지만, 상대의 입으로 가져가야 천국이 되는 것이다.
최근에 세계적인 기업들이 인문학성적으로 95%의 인재를 선발하는 추세다.
구글이 그렇고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이 그렇다.
인생에 절대적인 진리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인류역사상 뛰어난 다섯 분
의 천재들이 저승에서 만나 토론을 벌렸다. 모두 유대인들이었다.
‘사람은 왜 사는가?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무엇인가?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제일 오래 산 모세가 머리를 가리키면서 ‘지혜’라고 입을 열었다.
그 다음 예수가 가슴에 손을 얹고 ‘사랑’이라고 강조한다.
한참 후대의 칼 마르크스는 ‘배’를 두드리면서 ‘먹는 것’정신이 아니라 물질
이다.주장한다. 광에서 인심난다. 정신이 물질의 영향을 받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 다음 후세인 프로이드는 국부를 만지면서 ‘성’이라고 sex라고 주장한다.
얘기를 다 듣고 난 막내 아인슈타인이 마지막 말했다.
“여러 선배님들의 말씀이 다 일리는 있지만은 어느 하나가 절대적인 것은 아닌
것 같고, 다 상대적입니다. 인생에 정답은 없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이후부터 절대성이 부정하고 상대성 원리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