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는 논어에서 “지기불가 위이위지(知其不可 爲而爲之)”라 했다.
사람들은 공자를 ‘불가능한 것을 알면서도 한다.’고 힘을 낭비하는 공상
가라고 했다. 그러나 불가능하다고 해서, 어렵다고 해서 하지 않는 것
보다는 ‘불가능하고 어려워도 하는 것이 낫다’고 공자는 말 한다.
그래야 진보(進步)가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불가능해 보일지 모르나 결코 이상을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가까운 곳의 작은 꿈이 아니라, 멀리 있는 큰 야망을 의미
한다. 처음엔 너무 커서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발 한발 다가갈수록 그것
은 자꾸 작아질 것이기 때문이다.
작가 이문열은 <젊은 날의 초상>이라는 소설 속에서 이렇게 외친다.
“나는 생각한다.
진실로 예술적인 영혼은 아름다움에 대한 처절한 절망위에 기초한다고.
그가 위대한 것은 그가 아름다움을 창조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불가능한 줄 알면서도
도전하고 피 흘린 정신 때문이라고.
너도”
절망이야말로 가장 순수하고 치열한 열정이다.
사람들이 불행해지는 이유는 ‘진실하게 절망하지 않기’ 때문이다.
삶의 밑바닥을 치면 다시 솟아날 힘과 용기가 생기는 법이다.
그러니 꼭 진실하게 절망하고 절망하라. 는 말이다.
일본의 작가 엔도 슈사쿠의 책 <회상>에 나오는 얘기다.
“코이라는 비단 잉어가 있다. 이 잉어가 자라는 모습을 보면 참
으로 신기하다. 사는 공간의 크기에 따라 몸의 크기도 달라진다.
작은 어항에 넣어두면 5~8센티미터밖에 자라지 못하지만,
커다란 수족관이나 연못에 넣어두면 15~25센티미터까지 자란다.
그리고 강물에 방류하면 90~120센티미터까지도 성장한다.”
큰 꿈을 품은 사람은 미래에 큰 사람이 되고 작은 꿈을 품으면 작은
사람이 된다. 꿈의 크기가 사람의 크기이고 人生의 크기이자 미래의
크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