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치면 모자람보다 못하다는 것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 합니다.
지나침과 모자람의 적당한 사이를 정한다는 게 참 딜레마입니다.
독일의 철학자 쇼펜하우어의 <수상록>에 나오는 우화 “호저의 딜레마”생각이
나서 글을 씁니다.
북극에 사는 ‘호저’라는 동물이 만들어내는 적절한 ‘사이’가 떠올라서입니다.
호저는 고슴도치처럼 온몸에 날카로운 바늘이 돋친 짐승입니다.
그런데 어느 추운 날 산속에서 호저 두 마리가 서로 몸을 가까이하여 체온을 높
여 추위를 이겨냅니다.
하지만 가까이 가 몸을 붙이자 날카로운 바늘이 서로를 찌릅니다.
‘아이, 따가워!’
서로가 몸을 가까이 하게 되면 따뜻하지만 서로의 몸에 난 가시털이 서로를 찔
리게 되는데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렇다고 떨어지면 체온이 낮아져 추위를 견딜 수 없습니다.
그래서 호저들은 서로의 간격을 좁혀 나가다가 상대의 가시에 찔리지 않고 추위
도 이길 수 있는 ‘적당한 거리’를 찾아냅니다.
그래서 쇼펜하우어는 “사람과 사람 사이”그것은 호저들의 안타까운 모순 속에
숨어 있다고 말 합니다.
어릴 적 어머니는 늘 말씀하셨습니다.
“사이좋게 놀아라.”
그러나 그때 우리는 ‘사이’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모르고 지금까지 살았습니다.
지혜로운 호저는 찔리지도 춥지도 않는 ‘사이’를 찾아냅니다.
어머니가 말씀하신 것처럼 사이좋게 살기위해서.........
나무 위에, 전신줄 위에 모여 앉아 있는 새들의 모습을 보면 오선지 위의 음표
처럼 자로 젠 것처럼 ‘일정한 사이’를 두고 떨어져 앉아 있어요.
새들은 혼자 날아갈 때를 위하여 함께 모일 때에도 날개를 펼 만큼의 거리를 둔
답니다.
아주 많이 사랑하면서도 반드시 지켜주어야 할 ‘적당한 거리’!
친하다고, 가깝다고 이걸 무시하는 것은 서로를 찔러 상처를 줍니다.
칼린 지브란은 <사랑을 지켜가는 간격>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함께 있되 거리를 두라.
그래서 하늘 바람이 너희 사이를 춤추게 하라.
서로 사랑하라. 그러나 사랑으로 구속하지 마라.”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한다고 했습니다.
차이에 대한 인식을 넘어 ‘서로를 미워하지 않고 바라보는 방법’아닌가요.
남과 사이좋게 지내기는 하나, 무턱대고 어울리지 마라는 뜻입니다.
적당한 간격을 불가원 불가근(不可遠 不可近) 이라 한답니다.
너무 멀리도 너무 가까이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속된 말로 사이란 난로를 대하듯 하라는 것입니다.
너무 가까이 하면 데고, 너무 멀리하면 추위를 이길 수 없기 때문 아닌가요.
적당한 간격을 지켜내기가 참으로 어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