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 말해주는 것
처음 보는 사람이나 오랜만에 만나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보는 것이 얼굴이다.
지난 주말에 친척 8순 잔치에 갔는데 초대된 분들 얼굴이 예전의 모습은 아니었다.
관상이란 “먹고 생각하고 행동한대로 몸이 변한 결과”라는 말이 맞는 것 같다.
그러니 관상이 타고난 생김새가 아니라 살아온 흔적의 증거라면 관상의 특징은
“변한다”는 것이다.
관상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예수가 열두 제자와 나란히 앉아 있는“최후의 만찬”그림 속에 예수와 유다의 모델
은 같은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이 그림을 그린 화가가 품격 있고 정갈해 보이는 사람
을 골라 예수를 그린 뒤 시간이 흘러 마지막으로 유다를 그릴 때 예수와는 달리 성
품이 거칠어 보이는 사람을 찾아 모델로 세웠는데 그 사람은 전에 예수 모델을 했던
그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사이 방탕하고 무절제하게 산 탓에 그 사람의 관상이 몰라보게 변한 것이다.
조선시대 김 만덕이라는 백정이 푸줏간을 운영하고 살았다.
어느 날 두 노인이 고기를 사러왔다. 한 노인이 ‘만덕아 고기 한 근 떠 달라’하고 한
노인은 ‘김 서방 고기 한 근 떠 주게 나’하였다. 그런데 두 노인에게 떠준 고기의 양
이 눈에 띄게 달랐다. 적게 받은 노인이 벌컥 화를 내면서 따진다. 배정 김 만덕이가
대답하기를 ‘한 근은 김 만덕이가 썬 것이고, 다른 한 근은 김 서방이 썬 것 이지요“
이처럼 사람과 사물의 본성을 따르지 않으면 돌아오는 결과는 이런 것이다.
프랑스의 휴양지 니스에 있는 한 카페에 재미있는 가격표가 붙어있다고 한다.
coffee ! 7 Euro ((반 말 비슷하게 커피 주문하면 약 1 만원)
coffee please ! 4.25 Euro (커피 주세요. 하면 약 6 천원)
Hello, please coffee ! 1.4 Euro (안녕하세요. 커피 주십시오. 하면 2 천원)
‘갑 질’ 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머지않아 우리나라도 이런 가격표가 붙을지 모른다.
나는 요사이 조카가 운영하고 있는 식당에서 서빙 일을 돕고 있다.
하루에 100 여명의 고객이 찾는다. 서빙 하다가 물 컵이 넘어지면서 손님 옷에 물이
조금 튀겼다. 나는 빨리 죄송합니다. 조심하겠다고 했다.
손님은 “괜찮습니다. 곧 마를 텐데요. 일 보세요”한다. 관상이 퍽 좋아보였다.
내가 이런 글을 쓰는 이유는 거울 속의 내 모습에 스스로 채찍질을 하고 싶어서다.
나이 듦이 두려운 게 아니라 내 관상이 나빠질까 두렵기 때문이다.
오늘도 웃고, 사랑하고, 용서하고, 배려하고, 베풀어 품격 있는 사람이 되겠다고 스스로
다짐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