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의 달력 한 장을 뜯어 낼 때 가슴이 덜컹 내려앉는다.
내 나이를 확인해본다. 얼핏 스치는 감출 수 없는 주름 하나를 바라
보며 거울에서 눈을 돌리는 때가 있다.
가는 걸 알면서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이 주위에 너무 많아지고
있다. 시드는 꽃을 누가 어떻게 멈춰 세운단 말인가.
흐르는 강물을 어떻게 붙잡아둘 수 있는가
지는 저녁 해를 어떻게 거기 붙잡아 매 둘 수가 있는가.
시간 속에 영원히 살아있는 것은 없다.
낡고, 때 묻고, 시들지 않은 것은 없다.
시간의 강가에 영원히 붙잡아둘 수 있는 나룻배도 없으며, 강물처럼
흐르는 시간을 묶어둘 수 있는 밧줄도 없다.
분명히 사랑한다고 말했는데 그 사람도 없고 사랑도 없다.
분명히 둘은 서로 뜨겁게 사랑했는데 그 뜨겁던 사랑은 간 데가 없다.
사랑이 어떻게 사라지고만 것인지 생각해본다.
피할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다가오는 것을 알면서도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야 할 때가 있다. 아무리 몸부림쳐도 이미 늦어버린 인연의 시
간을 눈으로 바라보면서도 손으로 잡을 수 없는 날이 있다.
그래서 억장이 무너지는 저녁이 있다.
높이 나는 독수리의 모습을 간직하고 싶어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박제
이고 지는 꽃을 가장 아름답게 꽃피던 모습으로 멈춰 세운 것이 조화 다
하늘을 잃어버린 독수리와 향기가 없는 꽃을 만드는 것
거기까지가 우리의 한계다.
분명 나도 모습이 많이 달라지는 것을 느끼는 날이 있다.
사실 가장 많이 변한 건 나 자신인데 그걸 한참 늦게야 깨닫는 날이 있다.
살면서 잡을 수 없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나 자신이었음을 그동안 우리는
모르고 있었다.
붙잡지 못해 속절없이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다.
흘러가고 변해가는 것을 그저 망연히 바라만 보고 있어야 했던 것이 바로
나인 것을 왜 이제야 깨닫는지 억장이 무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