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것만 알고, 내가 아는 것만 믿고, 내가 믿는 것만 실행
하면서 그것을 세상의 기준으로 삼고 세월을 보낸다면 당신은 대단한 착각이
며 고집이다.
사람은 누구나 시간의 덫에 빠지기 쉽다.
자기가 살아온 시간 속에서 겪은 경험의 틀 속에서만 생각하고 판단하는
버릇이 있기때문이다.
또 사람은 공간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자기가 살아오고, 살고 있던 곳, 자기 주위의 환경에 익숙해지면서
그 공간에서 느낀 것, 그 공간에서 통용되는 것을 세상의 기준이라
고 착각하기 때문이다.
이같이 자신이 경험해온 시간과 자기가 몸담아온 공간의 잣대로 세상을
재단하는 마음이 고착된 상태, 그것이 바로 아집인 것이다.
예를 들어 한국 음식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유지만,
그것이 객관적 진리는 아니다.
모두에게 다 맛있다는 음식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사람 중에도 대구 사람은 대구 음식이 맛있다고 하고, 전주 사람은
전주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한다.
일본에서 태어난 사람은 일본 음식이 가장 익숙하고, 중국에서 나고 자
란 사람은 중국 요리가 가장 편한 것이다.
그건 어릴 때부터 그 고장에서 살고 그 고장의 음식에 길들여져 있기 때
문에 당연한 일이다.그러나 그 익숙함 때문에 새로운 것, 바깥 것, 낯선
것을 몰아내서는 안 된다.
새롭고 낯선 것을 ‘얄궂다’고 배척하기 보다는 ‘새로우니까’ ‘다르니까‘
오히려 익숙한 것보다는 더 넉넉하게 받아들이려는 자세여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열린 자아를 만드는 동력이 될 것이다.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어 갈수록 우리는 더욱더 수비벽을 높이 친다.
자기를 바꾸려하지 않고, 지키려고만 하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나이를 먹을수록 오히려 자기가 알고 있고, 믿고 있는
것을 되돌아보고 의문을 품는 연습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그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사람이 있는가?”이다
대개의 인간은 한계에 놓여야만 비로소 지금까지의 자기 자신과 정면으
로 맞닥뜨리게 된다.
부모를 잃고 나서야 부모의 은혜를 알게 되고,
사랑하는 이를 잃고 나서야 그 소중함을 뼈에 사무치게 된다.
추위와 배 고품을 겪고 나서야 주위 사람의 고통에 공감한다.
모든 것을 잃고 나서야 다른 사람의 존재를 느끼게 된다.
철들자 이별이라고 하지 않던가?
깨달음의 시간은 너무 늦게야 찾아오는 법이다.
사람의 인생은 단 한 번뿐이다.
우리는 연습 없이 태어나서 실습 없이 인생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삶은 누구에게나 낯설고, 고통스럽다.
그 고통으로부터 숨기위해서 자아의 둘레에 벽을 쌓아올리려고
해서는 안 된다. 딱 한 번뿐인 이 소중한 삶을 후회 없이 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장 먼저, 가장 자주해야 할 연습은 무엇인지 아는가?
‘내가 누구인지’ 스스로 물어보는 일이다,
내가 믿고 있는 것이 정말 진리인지 끊임없이 질문하는 일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에 귀 기울이는 일일 것이다.
‘반면교사(反面敎師)’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아 ! 저 사람처럼 살아야 하겠구나,
아 ! 저 사람처럼 살아서는 안 되겠구나. 하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인생은 딱 한 번뿐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