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어느 때에 가장 행복해할까? 손녀딸에게 기시미 이치로의 <미움 받을 용기>라는 책을 선물하면서 이런 질문 을 했다.“사람들은 어느 때에 가장 행복해할까?” 손녀는 너무나 당연하고 쉬운 것을 묻는 거야고 하면서 이렇게 대답한다. “그거야 물론 돈을 셀 때지요” 나는 그만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순간 무언가에 들킨 사람처럼 좌우를 두리번거리며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벌거벗은 임금님을 향해 모두가 아름답다고 경탄했을 때“임금님은 벌거벗었다” 고 소리 지르던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그것은 충격적이었지만 신선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이 시대 많은 사람들도 돈을 세면서 가장 행복해 할 것 같았다. 나만 해도 그랬다. 내가 직장에서 월급봉투를 받았을 때 나도 봉투 안에 든 돈을 꺼내 몇 차례나 세어보면서 감사하고 행복해 했던 것도 사실이다. 어머니가 노쇠하셔서 거동을 제대로 하실 수 없을 때 나는 천 원짜리 뭉치, 만 원 짜리 뭉치, 돈 다발을 갖다드리며 세어보시라고 했었다. 돈을 셀 때 나도 행복했었으니까? 역시 어머니도 싫지 않은 모습이 분명했었다.
그러나 돈에 대한 어린 손녀의 대답이 정곡을 찌른 대답이라고 시인해버리기엔 무언가 부끄럽고, 두렵고, 난감해지기조차 했다. 평소에 아이들에게 돈에 탐닉한 모습을 보여주었다면 ‘황금 보기를 돌처럼 보라’고 강조했던 우리 어른들이 어찌 부끄럽지 않겠는가. 굳이 변명할 생각도 없고 돈쯤을 우습게 여길만한 처지도 못 되지만 돈과 행복과의 관계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
사람들이 돈을 셀 때 행복해하는 것은 다름 아닌 자신의 노력에 대한 대가에 감사 하고 감격한 것 아닐까? 그것은 마치 봄부터 가꾼 수학을 가을걷이 하다가 울려오는 종소리에 지순하게 고개 숙인 밀레의 그림 <만종>의 분위기처럼 눈물겨운 순간일 것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로 자신의 소중한 시간을 바쳐서 얻은 신성한 대가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것이리라. 물론 나도 그중 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현명한 사람들은 깨달을 것이다. 욕망을 무한히 키워놓고 그 욕망을 위해 허우적이는 가운데서는 행복이 결코 존 재하기 힘 든다는 것을..... 젊고 의욕이 많은 사람들은 욕망을 늘려가면서 행복하기도 하지만, 점차 나이가 들 면서는 차츰 자신의 욕망을 줄이면서 또 다른 행복을 만끽하기도 한다. 그러고 보면 행복은 크고, 빛나고, 풍요로운데도 있지만, 작고 조촐하고 절제된 가운데도 있는 것이다.
높은 산을 오르며 땀을 뻘뻘 흘리는 사람은 저 가까이 산 정상이 보이므로 행복해할 것이고 낮고 조용한 골짜기를 따라 내려오며 발밑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 밟는 소리 와 산골 물소리에 또한 행복해할 것이다. 우리는 하루에도 몇 번씩 삶의 이쪽인 천국과 저쪽 끝인 지옥을 뜨겁게 오르내리며 살아간다. 내 생명을 다한 노력의 결실에 감사하고 즐기는 마음만 있다면 우리는 행복 하다고 큰소리쳐도 되지 않을까? 그러고 보면 행복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내 두 팔 안에 있음이 분명해진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