母性愛란 바다보다도 깊고 하늘보다도 더 깊은 그 무엇이라고 배워왔다.
실제 우리 어머니들에게서 그런 모습을 직접 목도하고 그 모성애 안에서 우리가 아무 탈 없이
자란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어머니와 자식과의 관계를 너무 본능적인 이기주의 관계로만 묶어놓은 나머지 “내 새
끼의식”만을 앞세워 남의 새끼야 어찌되든 내 새끼만 잘되면 그만이라는 생각들이 母性愛인
줄 아는 부모가 너무도 많다.
과보호, 과잉 교육, 과다한 혼수 결혼, 결혼시킨 후에도 잡다한 서비스까지, 이런 모성애는 곤란
하다는 말이다.
자식을 위해 세 번씩이나 이사를 했다는 맹자 어머니의 일화를 ‘사랑’으로 잘 못 받아드린 이
기적인 모성을 이 땅의 어머니라 불러서는 안 된다.
구약 시대에 <한나>라는 여자가 기도와 서원으로 얻은 아들 사무엘을 젖을 떼자마자 성전으
로 데려가 대제사장에게 맡겨 성막에서 자라게 한다.
모세에 필적할 만한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로 선지자가 되었다.
이처럼 母性愛의 본질은 이별과 상실을 최종 목표로 하는 서글픈 사랑임을 반드시 알아야 한다.
파스칼은 모성애에 관해서 특징적인 두 가지 요소로 분석하고 있다.
그 하나는 ‘합일의 정열’이다. 자식과 함께 있고 싶다. 함께 살고 싶다.
자식과 운명을 함께 하고 싶다고 바라는 모성의 본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합일의
정열만으로는 자식을 결코 훌륭하게 키울 수 없다고 한다.
자칫 자식과 가장 가까운 존재라는 이유로 올바른 인간성 형성에 최대의 장애가 될 수 있기 때
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파스칼은 母性에서 ‘분리의 열정’이 동시에 필요하다고 역설하는 것이다.
결국 어머니의 사랑이란 자식을 과감하고 냉정하게 떼어내는 데 있다는 것이다.
이것이야 말로 여성에게 부과되는 가장 엄격한 행위로 어머니로서 최종 능력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떼어내는 열정이 훗날 효도하는 자식으로 거듭난다는 사실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아쉽다.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하는 자를 멀리 놓아주는 능력은 위대한 모성애가 아닐 수 없다.
이기심이나 독점욕, 지배욕을 버리고 사랑하는 자의 행복만을 바랄 뿐,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음
으로써 진실로 모성애는 위대해지는 것이다.
자식이 홀로 독립하여 떠나는 것은 부모에 대한 보은(報恩)이라고 생각해야 할 것이다.
자식과 함께 하고 싶다는 합일의 정열만을 내세우고 그것만을 집착하는 모성애는 오직 본능
(本能)적인 모성애일 뿐이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죽은 나무에 꽃도 피우게 하는 것이 모성애라 하지만, 자식 스스로 제어하고
끝없이 아프게 이룩해내지 못하면 오히려 불결해지기까지 하는 것이 또한 모성애인 것이다.
이 세상 어딘가에 항상 문 열어놓고 기다리시고 계실 따뜻한 어머님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행복
해질 수 있는 자식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