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노.병.사(生.老.病.死)의 스텝
사람은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生 老 病 死를 누구도 피할 수 없고 온전하게 겪어야 한다. 그 앞에서는 우리 모두가 공평한 것이다. 사람은 태어나서 스물다섯까지는 계속 성장세포가 열려있지만 그 이후에는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다고 한다. 500년 전에 쓰여 진 ‘동의보감’에 인간은 50세를 넘어가면서 몸이 쇠약해해지고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술 마시고, 과식하고, 분노조절하지 않고, 성욕을 마구 쓰기 때문이라고 한다. 지금 우리시대에 적용해 봐도 하나 어긋나는 게 없다. 그래서 ‘제 명에 못 산다’는 말이 생긴 것이다. 조선의 왕들도 평균 수명이 40이었는데 자기를 잘 조절해서 양생(養生)을 한 왕은 80이상을 살기도 했다.
열심히 일하고, 돈 벌어 쓰다가 60이 돼서 환갑(정년)을 맞이하면 죽게 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었는데, 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인류를 굶주림과전염병으로부터 구제했고 심지어 겨울에는 춥지 않게 여름에는 덥지 않게 만들며 어느 사이 100세, 120세 인생을 살게 되었다. 그런데 100세 인생 앞에서 축복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어떤 준비도 없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것이다.
이같이 자본주의는 예전에 비해 물질적 풍요를 누리게 했지만 우주 질서의 대원칙은 부유하면서 정신적 가치도 풍요롭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즉 물질적 풍요는 정신을 빈곤하게 만든 것이다. 현대인들이 돈도 잘 벌고, 연애도 잘 하고, 오래 살겠다고 우기지만 그것은 탐욕이다. 물질과 정신은 선택이 아니라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다.
백수 청년이 너무 먹고, 일 안하고, 집에서 TV보고, 컴퓨터 게임만하고 앉아 있다면 물질적 풍요라고 말 할 수 있겠는가. 100세 시대를 암울하지 않게 살아가려면 100세 시대에 맞는 생 노 병 사의 스텝을 춘 하 추 동에 맞춰 밟아나가야 하는 것이다. 인생의 겨울인 시점에 봄 스텝을 밟고 있다면 웃기는 것이다. 철들지 않은 상태로 보낸 삶은 산 것이 아니다.
오래 산다는 것은 내가 그 시간을 어떻게 통과했느냐가 핵심이지 시간만 늘어난 게 중요한 것이 아니다.
만일 100세를 산다고 하면 지금 60대인데 남은 40년은 뭘 하고 살까?
술 마시고, 몸에 좋다는 음식 다 먹어가면서 성욕을 채운다. 이건 동물이다. 이렇게 계속 철들지 않은 상태로 살아가면 마음이 약해져서 죽는 게 너무 무서워지는 지옥이다 그러니 지옥은 내가 만드는 것 아닌가.
이렇게 살면 늙어가는 게 두렵고, 죽는 게 너무 두려워 지는 법이다.
인생의 지혜를 연마하고 인생의 이치를 터득해 충만한 삶의 스텝을 밟아가야 늙어가는 게 두렵지 않고 죽음 앞에 태연해 질 수 있는 것이다.
공자는 73세, 부처는 80세까지, 예수는 33세, 이들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지 깨우쳐야 한다. 2.000년 전에 세상을 떠난 분들이지만 향기가 세상 곳곳에 퍼져 남아 있지 않은가.
노벨 평화상을 받은 미국의 카터 대통령은 물러나서 환경운동가로 활동한 게 대통령 때보다 유명해졌다. 그분이 92세인데 몸에 암 종양이 다 번졌다는 의사의 말을 듣고, 이제 하느님께로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며 마음이 너무 편안해졌다고 한다. 이게 바로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거친 노인의 지혜인 것이다. 아무 아쉬움과 미련이 남지 않는 충만한 것이다.
‘동의보감’의 생체리듬에 따르면 남자는 64세, 여자는 49세에 자연스런 폐경기라고 한다. 이때가 되면 여성은 남성적인 기운이 나고 남성은 여성적인 기운이 나와서 음기와 양기가 섞여 세팅된다는 것이다. 남성과 여성 사이에 이제는 사랑이 아니라 우정의 시간이 시작되는 것이다.
우정(友情) 이를 동양에서는 도반(道伴)이라고 한다.
여기서 배움이 일어나면 스승이면서 친구, 친구이면서 스승인 사우(師友)가 되는 것이다.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관계가 된다. 스승인데 친구처럼 허물없이 지낼 수 있고 친구인데 그를 스승으로 존중할 수 있는 관계. 인간이 태어나서 맺을 수 있는 최고의 관계 아닌가.
부부도 이런 관계가 되지 않으면 황혼에 헤어질 일만 남는다. 같이 못산다.
예전에는 뜨거운 열정, 성적 에너지로 산거다. 자식을 키울 때는 공동의 과업이었지만 자식 다 크고 나서 떠나면 둘이서 소 닭 보듯 데면데면 해진다. 그래서 애완견을 쳐다보고 산다. 이렇게 점점대화가 안 되면 쪽지 대화를 한다. 이혼 서류에 도장 찍으라는 말도 쪽지로 남긴다고 한다.
이제 음양이 적당히 섞인 인간의 시간이 온 것이면 우정에 맞는 스텝을 밟아가야 성숙해지는데 60이 넘어간 할머니가 손녀딸과 미모를 겨루며 44사이즈를 입겠다고 우기면 주변 사람들이 미치고 돌아버린다. 아무리 돈이 많고 문명의 혜택이 풍요로워도 이처럼 생체리듬에 엇박이 생긴 상처를 치유하지 못하고 우리 모두다 헤매고 있다고 봐도 틀림이 없다.
이제 물질과 정신의 균형점을 찾아야 할 타이밍인데 ‘불금’을 쫓아서 잠을 자지 않고 고스톱, 음주가무, 먹 방, 포르노, 게임, 과도한 쇼핑, 드라마 다시 보기 이런 걸 하느라 시간을 허비하면 삶의 언 바란스다.
늙고 병들고 노쇠해지면 사실 많은 돈이 별 필요하지 않다. 쇼핑도 댕기지 않고 예쁘고 멋지게 보이고 싶은 욕구도 별로 없고, 맛있는 음식도 과식하면 병만 생긴다. 동서고금을 통한 대원칙은 ‘소식’하라는 것인데 사실 많은 돈이 뭘 필요한가.
우리가 ‘청춘이 멋지다’고 하는 이유는 많은 가능성을 실험하고 시행착오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많은 실패를 경험해도 된다는 것이다. 만일 하는 일마다 술술 잘 풀려 나긴다면 그 사이에 얻은 게 없지 않은가.
현대인들이 실패를 ‘트라우마’라고만 말하는데 절대 그렇지 않다.
동양에서는 인간이 진실한 행복을 누리려면 81난(80번을 넘게 어려움을 거쳐야)을 겪어야 한다고 보는 것이다. 서유기(중국 명대의 장편소설)를 보면 손오공과 저팔계가 108요괴를 만나고 81난을 겪는 게 미션이다. 인간은 그래야 정신을 차린다. 그렇지 않으면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에 완전한 노예가 되는 것이다.
81난이나 108요괴가 나를 힘들게 했던 그 실패들이 나의 탐욕과 분노 어리석음을 덜어주는 것이다. 그래서 실패가 자랑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런 걸 경험한 사람이야”라고 하는 스토리가 있어야 하는데 취직도 잘 되고, 연애도 술술 풀리고, 중년에는 중산층에 무사히 편입한, 분들은 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있다. 자기 스스로 생성한 스토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이 겪은 실패와 실수와 고생을 자랑스럽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걸 본인이 겪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에게 1난, 2난만 닥쳐도, 한 두 번의 요괴만 만나도 그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뼈 빠지게 번 돈을 자식에게 올인 하는 우를 범하며 한탄하며 살아가는 부모들이 부지기수다.
자식은 부모를 위해 절대로 올인 하지 않는다.
인간의 운명은 자연에서 절대로 못 벗어난다.
그래서 인간 본연의 생체리듬을 배워야 한다.
40대는 60대는 80대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깨우쳐 가야 하는데도 남자는 64세에 폐경기가 오는데 우리 여자는 49세에 폐경기 빨리 온다고 억울해 하며 호르몬 주사를 맞고 남자는 비아그라를 먹기 시작하는데, 해야 할 영역이 이것 밖에 남지 않았다고 여기기 때문 아닌가.
진정한 노후 대책은 돈이 전부 아니다.
몇 십억을 벌어 놨는데 어느 날 치매에 걸리면 그걸 뜯어 먹겠다고 자식들이 나타나서 아귀다툼을 해댄다. 결국 평생 서빠지게 일해서 모은 돈이 자식들에게 폭탄이 되는 것이다. 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