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 학이편>의 첫 페이지 첫 줄은 이렇게 시작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학이시습지 불역설호)
배우고 때때로 익히면 즐겁지 아니한가.
學이란 가르침을 받는 것이고, 習은 학업을 익히는 것.
時習(시습)이란 수시로 반복하고 익힌다는 말이다.
비유하여 如鳥數飛(여조삭비)라 했다.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서는 수없이 자주 날갯짓을 반복해야
하는 것처럼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혀야 한다는 교훈이다.
하수와 고수 사이를 이어주는 사다리는 習(습)밖에 없다.
中庸(중용)에 百千之功(백천지공)말이 있다
남이 한 번에 능하다면 나는 열 번 할 것이요.
남이 열 번에 능하다면 나는 천 번을 할 것이다.
그러므로 배우지 않으면 그만이지만 만일 능하지 못하면 결코
배우고 익히는 것을 중단하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이다.
혹시 당신은 재능이 없다고 포기하려는가.
말콤 그래드웰의 말이다.
무슨 일이든지 “1만 시간을 익히고 반복해라” 달인이 된다.
새의 날갯짓을 봐라 수백 번, 수천 번을 반복한다.
익히지 않고는 익숙해질 수 없다.
바보스럽게도 우리는 배운 뒤에야 부족함을 알 게 된다.
그러니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맞다.
어려움이란 새로움의 시작일 뿐이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자만이 새로운 단계,
새로운 세상에 진입 할 수 있다.
<종의기원>을 쓴 찰스 다윈은 이렇게 말했다.
“살아남는 것은 변화에 잘 적응하는 종이다.”
빌 게이츠는 말 한다.
“나는 힘이 쌘 강자도 아니요 두뇌가 뛰어난 천재도 아니다.
날마다 새롭게 변했을 뿐이다”
살아온 날이 중요한가요. 살아 갈 날이 중요한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