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서리코너 장인수 선생 노량진 대성학원 입시 전문학원에서 강사로 퇴직후 1만여권의 책을읽고 주옥같은 내용 을 선별하여 진서리 코너에 게제하고 있습니다.
내가 이루지 못한꿈 자식에게 읽게 하십시요
  •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가
  • 2016-01-01
진서리

       그대는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어느 날 少林寺에 어찌나 눈이 많이 쏟아지는지 밤에도 어둡지 않을 정도였다.


흩날리는 눈 속에서 어느 젊은 사나이가 법당 안을 응시하며 서 있었다.


법당 안에는 어느 스님 한 분이 벽을 마주 보며 참선을 하고 있었다.


눈 속에 서 있는 젊은이와 그를 등지고 참선하고 있는 스님 사이에는 묘한 긴장이 흐르고 있었다. 무엇을 얻으려고 그 젊은이는 반겨주지도 않는 경내에 그렇게 고독하게 서 있었던 것일까. 자비를 품고 있는 스님은 무슨 이유에서 그 젊은이에게 일체의 마음도 허락하지 않는 것일까.



그러는 사이 밤은 깊어만 가고 어느 사이엔가 다음 날 새벽까지 계속 내리는 눈은 어느새 젊은이의 무릎까지 차올랐다.


법당 안의 스님은 마침내 젊은이에게 굴복하고 만다.


벽을 향하고 있던 몸을 돌려 바위처럼 눈을 맞고 서 있는 젊은이를 향하게 되었다.


“지금 그대는 눈 속에서 무엇을 구하는 것인가?”


젊은이는 자신을 ‘자유로운 사람으로 이끌어 달라’고 부탁한다.


그렇지만 스님은 매몰차게 대한다.



자유를 얻는다는 것.


그러니까 깨달음을 얻는다는 것은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이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자 젊은이는 칼을 뽑아들고 자신의 왼쪽 팔을 잘라서 스님에게 바친다.


눈발에 흩날리는 핏자국처럼 깨달음을 얻으려는 젊은이의 의지는 그만큼 애절하고 절실했던 것이다. 마침내 스님은 그 젊은이를 제자로 받아드리 게 된다.


그 정도의 의지면 깨달음에 이르는 노력을 중도에 포기하지 않으리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선불교의 역사상 가장 극적인 장면이었다.


마침내 선종의 첫 번째 스님두 번째 스님이 탄생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이제 짐작이 가는가.


법당 안에서 벽을 향해 참선하고 있던 스님이 바로 페르시아 왕자 출신으로 남인도에서 활동하다 중국으로 건너와 깨달음을 전하려고 했던 보리 달마고, 불퇴전의 기상으로 눈을 맞고 서 있던 젊은이가 신광(神光)이라는 사람이었다.


제자로 받아드리는 달마는 신광에게 혜가(慧可)라는 이름을 내린다.


즉 “지혜(慧)를 얻을 수 있다고 달마가 인정(可)하고” 있는 것을 표현한 법명이다.



달마와 혜가 !


선불교의 오래된 전통, 이심전심으로 표현되는 사자상승(師資相承스승이 제자에게 무언가를 전해주어 끊이지 않게 하는 것)의 전통은 달마와 혜가라는 두 사람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하기야 제자가 있어야 스승도 있을 수 있고 두 번째 세 번째 왕이 있어야 누군가는 태조라는 지위도 얻을 수 있는 법이다.


선종의 역사는 깨달음이 깨달음을 촉발하고, 등불이 다른 등불을 켜지도록 만드는 아름다운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깨달은 스승이 깨닫지 않은 제자를 강제로 깨달음에 이끌 수는 없다.


제자 스스로 깨닫도록 도울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깨달음이란 스승의 말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주인이 되어 살아가는 것이니까.


선종에서는 가르치기는 하지만 가르치는 것이 없으니 스승이라 하기도 뭐하고 배우기도 하지만 배운 것이 없으니 제자라 하기도 뭐한 아이러니가 존재 한다.


이 아이러니한 사제 관계에서 마침내 제자는 스승과 다른 스타일의 깨달음, 그러니까 자신만의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다.



달마와 혜가 사이에 일어났던 드라마틱한 일화는 지금도 보리 달마전으로 전해져 1500여 년 전 소림사 경내의 선홍빛 핏자국을 우리에게 기억하게 한다.


혜가가 자유로운 사람으로 이끌어 달라고 한 것은, 깨달음을 달라고, 고통으로부터 불행한 자신을 구해 달라는 것이다.



제자가 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혜가는 스승 달마에게 자신의 속병을 털어놓았다.


마음이 편하지 않으니 마음을 편하게 해 달라고,


조금만 일러주면, 자신도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서 질문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혜가는 스스로 노예를 자처하며 자신을 깨달음의 길로 인도해 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마음이 편치 않다는 말을 듣자마자 달마는 말한다.


그러면“괴로워하는 네 마음을 가져와라.


그리하면 네 마음을 편하게 해 주겠다.”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이제 마음만 가져오면 스승은 깨끗하게 자신의 마음이 겪고 있는 고통을 치유해 줄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렇지만 희망은 잠시 뿐 혜가는 다시 깊은 수렁에 빠지고 만다.


“마음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


바로 이 대목이 중요하다.


처음으로 진지하게 혜가는 자신의 마음을 응시했던 것이다.


우리도 고통으로 일그러진 마음을 찾으려는 혜가가 되어봐야 한다.


고통스런 마음을 응시하는 혜가의 용기를 가슴에 아로새겨야만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마음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다”라는 혜가의 말이 표면적으로는 절망에 빠진 절규로 들리지만 사실 고통에서 벗어난 희열의 표현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이 대목에서 시인 이성복은 이렇게 말 한다.


“네 고통은 나뭇잎 하나 푸르게 하지 못한다.”라고 말 한다.


“이야기 된 불행은 불행이 아니라.


행복의 설 자리가 생겼다.”라고 말 한다.


친구나 스승에게 자신의 불행을 이야기 하는 순간 그는 아마 불행에서 벗어나 편안함을 느끼게 될 것이다. 불행을 이야기 하는 순간 우리는 불행에 거리를 두게 된다.


마치 아름다운 꽃을 그리려면 그 꽃으로부터 일정한 거리를 두어야 하는 것처럼, 적어도 불행한 자신의 모습에 거리를 두고 직면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불행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시인 이성복은 “행복이 설 자리가 생긴다.”라고 이야기 했던 것이다.




그렇다 혜가가 고통스런 마음을 찾으려고 했던 마음이 중요한 것이다.


“마음을 찾으려고 했으나 찾을 수가 없습니다.”라고 말한 혜가의 말은 기묘한 데가 있다. 고통스런 마음은 괴로워하는 마음이지만, 그것을 찾으려는 마음 자체는 결코 고통스런 마음이 아니다.


고통스런 자신의 모습을 객관화하는 순간 우리는 고통을 초월하게 되니까.



어떻게 고통에 빠진 마음을 찾을 수가 있단 말인가.


불가능한 일이다.


결국 모든 부자유와 고통은 자신의 부자유와 고통에 직면하지 않는 비겁함 때문’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아무리 징그럽고 무서워도 우리는 고름이 철철 흐르는 상처를 응시해야 한다.


오직 그럴 때에만 우리에게는 작으나마 치료의 전망이 생길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