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과 타협하지말라
연휴에 영화 '암살'을 관람하면서 '선택과 결단'의 순간에 욕망과 타협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다시 확인한다. 춘원 이광수의 첫 소설이자 출세작인 <무정>은 1917년 일본 총독부의 기관지인 ^매일신보^
에 연재되었다 이광수에게 '매일신보'와의 인연은 신분상승을 위한 개인적인 야망을 실현하기
위해 총독부를 이용한 것인데 그것이 그만 그에게 친일이란 족쇄가 되고 만다.
그 어떤 변명과 합리화에도 불구하고 그의 정치적 타협은 '현실에서 살아남기'에는 성공했지만
'역사에서 살아남기'에는 실패한 선택이었다. 그의 후손들은 지금까지도 '독립운동가와 반 민족주의자' 사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미국에서 살고있는 이광수의 막내딸 이정화 박사는 아버지로 인해 피해를 입은 분에게 사죄한다
는 인텨뷰(2014년)를 하기도 했다.
연좌제 비슷한게 있으니 제 팔자는 민족 앞에 사과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제 아버지를 사랑하는 분들에게는 감사를, 미워하는 분들에게는 사죄를 드리고 싶어요. 이광수의 1남 2녀는 미국에서 사회적으로 성공했지만 아직도 아버지에게 드리워진 '친일'이라는
연좌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이광수는 1917년 새해 벽두 총독부 기관지인 <매일신보> 에 첫 소설 '무정'을 의욕적으로 연재
했지만 그게 지울수 없는 역사의 '주홍글씨'가 되었던 것이다. <무정>은 '욕망과 의무'사이에서 결단과 선택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교훈적으로 깨닫게 해준다.
즉 냉혹한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자신에게 주어진 의무를 저버리고 욕망을 쫓는다면 설혹 욕망
을 이루었다 해도 그 대가로 자책감이 동반된다는 점이다.
흔히 현실에서 살아남기 위해 욕망과 타협하는 경우가 있다. 정도가 아닌줄 알면서도 정도가 아닌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욕망과 의무'사이에서 혼란스럽다면 욕망의 요소를 최대한 배제하고 접근할 필요가 있다. 일시적으로 살아남기위해 욕망에 따른 선택을 한다면 끝내 자신도 죽이고 조직까지 죽이는 선택
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광수는 식민지 시대에 자신의 야심을 이루기위해 또는 살아남기 위해 총독부와 타협하는 쪽을
선택했을 테지만 그것은 결코 최선의 선택이 아니었던 것이다.
말 하자면 타협하면서 살아남을 수는 있지만 역사에서는 죽은 선택이었다.
살아가면서 당신에게 '욕망과 의무'사이에서 결단과 선택을 강요당한다면 어떤 선택을 하겠는가.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 조마리아 여사는 아들에게 이렇게 말 한다.
"너의 죽음은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조선인 전체의 공분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다. 옳은 일을
하고 받는 형이니 비겁하게 삶을 구하지 말고 대의에 죽는 것이 어미에 대한 효도라" 라며 당
당하게 목숨을 바치라고 했다.
김구선생의 어머니는 "나의 아들이 되기보다는 나라의 아들이 되라"고 하셨다.
윤봉길 의사의 어머니는 "우리 봉길이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 "이라고 하셨다. 영화 "암살"을 관람한다면 당신도 어떤 선택이 옳은지 사색을 하게 될 것이다.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검색만 할 뿐 사색이 사라졌다"
요즘 스마트 폰이 일상화된 디지털 세상을 빗대 서 하는 말이다. 사색이 없어졌다. 우리는 시시 때때로 "욕망과 의무"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받는다.
자칫 욕망으로 무게 쏠리면 의무로 무게 중심을 바로잡아야 한다.
그게 내가 살고 가족이 살고 모두가 사는 길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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