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청난 재산 뒤에는 범죄가 있게 마련이다”라고 한다.
발자크가 쓴 소설 <고리오 영감>이 세계 최고의 부자인 워런 버핏의 필독서가 된 것일까.
이 소설의 주인공 고리오 영감은 자신의 전 재산을 두 딸에게 넘겨주고 비참한 죽음을 맞게
된다는 내용이다. 여기서 교훈을 얻었을까 버핏은 자녀들에게 재산의 극히 일부만 줄 것이라고 공언하고 있다.
제면업자로 크게 성공한 고리오는 두 딸을 애지중지 키워 귀족과 자산가에게 거액의 지참금으로 어마어마한
50만 프랑까지 주면서 결혼시켜 보냈지만 그 후 두 딸들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대하지 않는다. 그걸 눈치 챈
고리오는 스스로 떠난다.
딸들은 떠나는 아버지를 말리지 않았다.
이 대목에서 저자 발자크는 “범죄에 아버지와 딸들이 공모한 셈”이라고 표현한다.
어제까지만 해도 딸들은 내 것이었고 나의 전부였는데 다음날 딸들은 나의 적이 되어버린다.
이와 비슷한 사례는 이 소설이 발표 된지 180여년 지난 오늘 날에도 여기저기에서 일어나고 있다.
물론 부모에게 기대지 않고 스스로 홀로서기를 하면서 부모를 극진히 대하는 딸도 사위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두 딸은 싸구려 하숙집에서 ‘죽어가는’ 아버지에게서 마지막 재산인 종신연금증서까지 받아간다. 고리오는 죽어
가면서 이렇게 탄식한다.
“자식이 어떠하다는 것을 알려면 죽어봐야겠군. 아 ! 이보게 자네는 결혼하지 말게. 자식을 낳지 말게”
이렇게 고리오 처럼 죽어가는 이들이 우리나라를 비롯해 지구촌 곳곳에 수 없이 많을 것이다.
고리오는 죽어가면서 딸들을 회상한다.
어린 시절 딸들은 아버지를 무척이나 사랑했었다. 이 세상 모든 딸들이 그렇듯이 말이다.
어린 시절 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고리오는 “하느님 ! 왜 그 애들은 영원히 어릴 수 없었을까요.
라고 읊으며 죽어간다. 그의 임종을 지킨 사람은 두 딸이 아니고 고리오와 함께 허름한 하숙집에서 기거
하던 청년이었다.
우리나라 자산가들의 최고 고민은 바로 자식에게 유산을 상속(증여)하는 문제라고들 한다.
자녀에게 ‘부모의 돈은 독’이 되기 때문이란다. 자신도 망치고 부모와의 관계도 파국으로 만드는 독이다.
자녀에게 사업자금을 대주는 것은 마치 독을 주는 것과 같다.
이때 어머니가 자식 편에 서서 아버지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업자금을 주는 경우가 있다. 자식은 그럴수록
어머니를 부추겨 아버지로부터 돈을 뜯어내려한다.
지혜로운 아버지라면 결코 주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홀로서기를 한다.
버핏이 이 소설을 애독했다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 같다.
물질만능세태는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자식에게 돈을 주고 싶은 부모마음 또한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러나 현실은 부모의 돈을 물려받아 사업하는 자식치고 인생을 제대로 산 자식 아직 본적이 없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쓸쓸하게 죽어간 고리오 영감을 생각해보고, 돈과 욕망 그리고 자식에 대해 생각해보자.
언젠가 고리오처럼 쓸쓸하게 죽어가지 않으려면 말이다.
세익스피어의 4대 비극 가운데 하나인 ‘리어왕’이 1608년에 발표되어 500년이 지났건만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저질렀던 것과 아주 흡사한 실수를 고리오 영감에서도 오늘 날에도 놀랍게 반복하고 있다.
전 재산을 딸들에게 물려주고 난 리어왕은 결국 궁궐에서 쫓겨나 폭풍우가 모라 치는 황야를 헤매며 딸들을
저주하며 광란한다는 작품이다.
제 몸도 자기 것이 아닌데 자식을 내 자식이라 하면서 어리석은 사람은 괴로워한다.
세상 누구도 자식에게만은 약하다.
하지만 내가 뭔가를 갖고 있을 때 자식과 내가 아무것도 없을 때 자식은 양과 이리처럼 사뭇 다르다.
실제로 부모가 가진 것이 없으면 부모를 향하는 자녀들의 발길이 뜸해 진다.
자식은 내 핏줄이지만 때로는 가장 박덕한 적이 될 수도 있음을 고리오 영감과 리어왕 두 작품 속에서 보게 된다.
내가 이 작품 속의 주인공이 될 수도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 같아 드리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