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작 뉴턴의 말이다
“내가 더 멀리 본 것은 거인의 어깨에 서 있었기 때문이다”
경제성장과 관련하여 ‘자원의 저주’라는 개념이 있다.
자원(에너지,식량)이 풍부한 나라는 경제성장이 빠를 거란 기대와는 달리
오히려 국민의 삶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한국 일본 이스라엘은 인구대비 자원부국보다 자원빈국에 가깝다.
중남미의 자원부국인 베네주엘라, 아르헨티나, 브라질은 ‘자원의 저주’에 해당한다.
자원이 ‘이득보다는 피와 가난’을 가져오는 상황이 비단 아프리카 뿐만아니다.
자원의 저주는 왜 생겨나는 것일까?
그것은 자원으로 얻은 부가 어느 한 쪽에 집중되어있기 때문이다.
부가 소수의 손에 집중되면 저주를 이끈다.
석유를 생산하는 중동 대부분의 나라가 군주국이고, 아프리카의 자원부국들이
독재와 내전에 시달리고 있으며 버마에서는 군부가 여전히 무력지배를 하고 있는 것은
자원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 되니 자원이 부족한 한국이 자랑스럽기까지 한다.
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다 고노스케는
가난 덕분에, 배우지 못한 덕분에, 몸이 약한 덕분’에 성공했다고 말했다.
현실적 제약은 어려움을 돌파할 방법을 떠올리는 힘을 가지고 있다.
어떤 사람이 어려움을 당하거나 가난한 시절을 굳세게 하면
그 사람을 분발하게 하여 위대한 업적을 남긴다.
사기를 쓴 사마천이 만약 궁형(생식기제거)이라는 치욕을 당하지 않았다면
우리가 어떻게 사기를 볼 수 있겠는가.
역사적으로 역경은 발전을 위한 동인이다.
구글은 혁신의 하나로 “창의성은 제약을 사랑한다.” 고 강조한다.
구글 학습검색 사이트에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서서 더 넓은 세상을 보라’는
문구가 나온다. 거인의 어께위에 서서 앞을 바라보면 더 멀리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에 순도 100퍼센트 새로운 아이디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공부한다.
170센티미터 키로 세상을 보지 말고 거인의 어깨를 빌려야 한다.
분명 거인 (고수) 은 존재한다.
그들의 지혜와 경험을 빌려야만 더 멀리볼 수 있다.
도공은 하나의 명작을 만들기까지 10개가 넘는 도자기를 부순다.
행복은 언제나 우리가 가장 두려워하는 곳에 있다.
본래 우연이란 없다.
무엇인가를 간절히 필요로 했던 사람이 그것을 발견한다면 그것은 우연히 이루
어진 것이 아니고, 자신의 소망과 필연이 가져온 것이다.
나는 ‘거인의 어깨위에 서서 앞을 보라’는 말을 좋아한다.
오늘은 어떤 거인의 어깨위에 올라 갈 것인가를 고민한다.
칸트인가, 공자인가, 링컨인가, 도산 안창호인가, 워렌 버핏인가?
나는 책을 통해 거인의 어께위에서 세 상보는 것을 즐긴다.